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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같은 음식만 반복해서 찾는 이유

steadystep1 2025. 10. 15. 00:50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 무렵, 우리는 습관처럼 휴대폰을 꺼내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엽니다. 수많은 메뉴가 화면에 펼쳐져 있지만 손가락은 어느새 늘 시켜 먹던 그 음식 위에 멈춥니다. 치킨, 김치찌개, 라멘, 떡볶이. 선택의 폭은 넓지만 실제 선택은 늘 좁습니다. 오늘도 그걸로 할까?라는 말 속에는 단순한 식습관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익숙함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이며 동시에 뇌 깊은 곳에서 작동하는 보상의 회로입니다.

음식은 생존의 수단이자 감정의 매개체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음식은 필요보다 선택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넘쳐나는 선택지 속에서 인간은 오히려 혼란을 느끼며 뇌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선택인 익숙한 음식을 택합니다. 우리는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안정감을 위해 반복합니다. 하지만 이 익숙함은 동시에 함정이 되며 우리의 감각을 둔화시키고 음식의 다양성뿐 아니라 삶의 폭까지 좁혀버립니다.

우리가 같은 음식만 반복해서 찾는 이유
우리가 같은 음식만 반복해서 찾는 이유

1.예상 가능한 보상이 주는 행복

인간의 뇌는 예측 가능한 보상을 가장 선호합니다. 새로운 자극은 흥미를 주지만 동시에 불안을 유발합니다. 반면 익숙한 자극은 안정감을 주며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게 합니다. 이때 핵심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바로 도파민 시스템입니다. 흔히 도파민을 행복 호르몬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도파민은 쾌감 그 자체보다 쾌감이 올 것이라는 기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다시 말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보다 그 음식을 곧 먹을 것이라 생각할 때 더 강하게 분비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늘 가던 국밥집 앞을 지나칠 때 풍기는 고소한 향기, 포장된 치킨 상자를 열 때 느껴지는 설렘 등은 모두 도파민이 활발히 분비되는 순간입니다. 이미 그 맛을 알고 있기에 뇌는 곧 만족스러울 것이다라는 예측을 세웁니다. 반면 처음 가보는 식당에서는 불확실성이 작동합니다. 맛이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이 도파민 분비를 억제합니다. 결국 인간은 리스크 없는 쾌감인 익숙한 맛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진화의 산물입니다. 인류의 조상은 생존을 위해 안전한 음식을 식별해야 했습니다. 새로운 음식은 독성이나 부작용이 있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낯선 것을 먹는 것은 위험이었습니다. 반면 익숙한 음식은 이미 먹어도 안전하다는 검증을 거친 것이었기에 생존 확률을 높였습니다. 이러한 본능적 패턴은 현대에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독성이 아니라 실망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익숙한 메뉴를 선택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안정감에는 단조로움이라는 대가가 따릅니다. 도파민 시스템은 반복된 자극에 빠르게 적응합니다. 같은 음식을 반복해서 먹으면 뇌는 점점 그 자극에 덜 반응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행복했던 맛이 점점 평범하게 느껴지고 우리는 다시 강한 자극을 찾아 나섭니다. 더 짜고, 더 달고, 더 기름진 음식을 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익숙함이 불러온 안정은 또 다른 중독의 문을 엽니다.
익숙함은 뇌의 에너지를 절약시켜주지만 동시에 감각의 폭을 줄입니다. 예측 가능한 행복의 공식은 어느 순간 예측 가능한 무료함으로 바뀝니다.

2.기억과 감정이 만든 맛의 고리

우리가 같은 음식을 반복해서 찾는 또 다른 이유는 기억과 감정의 연결 때문입니다. 인간의 뇌에서 미각, 냄새, 감정, 기억은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습니다. 냄새를 처리하는 후각피질과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그리고 감정 반응을 조절하는 편도체는 신경적으로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습니다. 이 때문에 어떤 냄새나 맛은 특정한 기억을 즉시 불러옵니다.

어릴 적 비 오는 날 어머니가 부쳐주시던 김치전 냄새를 맡으면 단순히 맛있다는 느낌을 넘어서 그날의 감정과 분위기까지 되살아납니다. 이러한 기억의 재생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감정적 복원의 과정입니다. 우리가 특정 음식을 다시 찾는 것은 입맛 때문이 아니라 그때의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감정적 조건화라고 부릅니다. 특정 음식이 특정 감정과 결합할 때 뇌는 그 둘을 함께 저장합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초콜릿을 찾는 사람은 단순히 단맛을 원해서가 아니라 초콜릿은 위로라는 회로가 이미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반복될수록 강화되며 결국 음식은 영양 공급이 아닌 감정의 진통제로 작동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런 감정적 연결이 무의식적인 의존으로 변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배가 고파서 먹는 것이 아니라 기분을 달래기 위해 음식을 찾게 됩니다. 기분이 울적하니 라면이나 끓일까, 퇴근길엔 역시 맥주지라는 말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감정적 회로의 결과입니다. 이렇게 형성된 패턴은 뇌의 보상 시스템과 결합되어 반복됩니다. 익숙한 음식은 과거의 기억을 불러오고 그 기억은 다시 그 음식을 강화합니다.

이 기억의 고리는 따뜻하지만 동시에 위험합니다. 음식이 추억의 상징으로만 작동할 때 우리는 현재의 감각을 놓치게 됩니다. 그때 그 맛을 되찾으려 하지만 사실 그 맛은 이미 사라진 과거 속에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현실의 맛이 아니라 기억 속의 맛을 먹게 됩니다. 익숙한 음식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감정적 시간여행이 됩니다. 그리고 그 여행이 잦아질수록 우리는 새로운 경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3.익숙함이 가져오는 심리적 안정과 그 이면 

익숙한 음식은 선택의 피로를 줄입니다. 현대인은 하루에도 수백 가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일을 먼저 처리할지, 어떤 콘텐츠를 볼지 등 매 순간 결정의 연속입니다. 이러한 결정은 뇌의 에너지를 소모시킵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결정 피로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익숙한 음식을 선택하는 것은 뇌의 에너지를 절약하는 일종의 자기 보호 전략입니다.
무난하게 김치찌개로 하자, 그 집은 실패가 없잖아라는 말은 불확실성 회피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편안함은 종종 성장의 반대말이 됩니다. 익숙한 음식은 뇌의 안정 회로를 강화하지만 동시에 감각의 확장을 막습니다. 새로운 음식은 뇌에게 학습입니다. 미각, 후각, 촉각이 새로운 조합을 경험할 때 뇌의 시냅스가 활성화되고 새로운 연결이 생깁니다. 그러나 같은 음식을 반복하면 이러한 학습이 멈춥니다. 결과적으로 미각은 둔감해지고 점점 자극적인 맛에만 반응하게 됩니다.

이 현상은 단지 미각의 문제가 아니라 창의력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다양한 감각 경험은 창의적 사고를 촉진합니다. 낯선 음식의 향, 색, 식감은 뇌의 연상 능력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단조로운 식습관은 감각적 자극을 제한하여 뇌의 유연성을 떨어뜨립니다. 숙함은 심리적 안정감을 주지만 창의적 활력을 앗아갑니다.

또한 익숙한 음식은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같은 사람들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메뉴를 반복하다 보면 대화의 내용마저 반복됩니다. 음식은 원래 관계의 촉매이지만 익숙함에 갇히면 관계는 점점 정체됩니다. 새로운 음식을 함께 시도하는 경험은 서로의 취향을 발견하고 대화를 확장시키는 기회가 됩니다. 결국 익숙함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까지 무디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 늪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완전히 낯선 음식을 시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존의 메뉴에 작은 변주를 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늘 먹던 파스타에 새로운 소스를 더하거나 같은 김치찌개라도 다른 지역의 식당에서 먹어보는 것입니다. 익숙함 속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감지할 때 뇌는 다시 학습을 시작합니다. 이렇게 편안함을 유지하면서도 자극을 더하는 방식이 익숙함의 함정을 깨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