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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와 베네수엘라가 걸어온 독재와 민주주의의 길

steadystep1 2026. 1. 5. 23:51

베네수엘라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로 불리던 국가였습니다. 그 부의 중심에는 언제나 석유가 있었지만 석유는 축복인 동시에 깊은 저주가 되었습니다. 이 글은 석유가 베네수엘라의 정치와 사회, 그리고 민주주의를 어떻게 형성하고 또 무너뜨렸는지를 따라가고자 합니다.

석유와 베네수엘라가 걸어온 독재와 민주주의의 길
석유와 베네수엘라가 걸어온 독재와 민주주의의 길

1.총과 석유로 완성된 질서 

베네수엘라 근대사의 출발점에는 후안 비센테 고메스라는 인물이 존재합니다. 안데스 산악지대 타치라 주의 가난한 목동 출신이었던 그는 1899년 반란을 통해 정치 무대에 등장했으며 1908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이후 무려 27년 동안 베네수엘라를 통치했습니다. 그의 통치는 흔히 질서의 시대로 불리지만 그 질서의 본질은 폭력과 공포였습니다.

고메스는 정치적 안정을 명분으로 군부를 최신 무기로 무장시키고 지방의 군벌 세력인 카우디요들을 무력으로 제압했습니다. 경찰과 비밀기관은 정권 유지를 위한 핵심 도구로 활용되었으며 반대 세력은 체포와 고문, 투옥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국가는 겉으로는 안정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 안정은 시민의 자유를 대가로 한 침묵 위에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억압적 통치를 가능하게 만든 재원은 석유였습니다. 석유 개발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고메스는 대농장주들의 불법 행위를 구실로 토지를 몰수해 자신의 가족과 측근들에게 분배했습니다. 이후에는 외국 자본에 석유 개발권을 양도하는 대가로 막대한 이익을 착복하며 개인적인 부를 축적해 나갔습니다. 국가는 석유로 부유해졌지만 그 부는 국민이 아닌 권력자의 사유물이 되었습니다.

1918년 마라카이보 호에서 석유가 처음 생산된 이후 베네수엘라는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1928년에는 세계 2위의 석유 생산국이자 세계 1위의 석유 수출국이 되었으며 마라카이보와 수도 카라카스는 국제적인 도시로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성장의 이면에는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불평등이 점점 더 깊게 누적되고 있었습니다. 고메스가 만든 질서는 결국 석유 위에 세워진 독재의 성채였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2.독재의 붕괴와 민주주의의 실험

1935년 고메스의 사망은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국민의 분노를 한꺼번에 폭발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석유 산업 시설을 공격했고 분노한 군중은 고메스 일가의 재산을 약탈했습니다. 장기간 지속된 독재는 이렇게 혼란 속에서 막을 내렸지만 베네수엘라 사회에는 새로운 질문이 남았습니다. 바로 민주주의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 질문에 가장 적극적으로 답한 인물이 로물로 베탄쿠르였습니다. 그는 고메스 독재가 시작된 해에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독재의 그림자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반정부 운동을 주도하다 투옥되었고 이후 오랜 망명 생활을 통해 다양한 국가의 정치 경험과 사상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베탄쿠르에게 민주주의는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억압 속에서 체득한 현실적인 대안이었습니다.

1945년 베탄쿠르는 청년 장교들과 협력하여 정권을 장악했고 민주행동당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민주 선거의 실시, 언론의 자유 보장, 정당 정치의 활성화는 베네수엘라 역사상 처음으로 제도화된 민주주의의 모습이었습니다. 비록 이 실험은 1948년 군사 쿠데타로 중단되었지만 민주주의의 씨앗은 이미 사회 전반에 뿌려졌습니다.

1959년 다시 대통령으로 당선된 베탄쿠르는 과거의 실패를 교훈 삼아 푼토피호 협약을 주도했습니다. 이 협약은 정권을 누가 차지하느냐보다 민주주의 자체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정치 엘리트 간의 합의였습니다. 여야 정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군부의 정치 개입을 차단하며 헌법 질서를 공동으로 수호하겠다는 이 약속은 베네수엘라 민주주의의 중요한 안전장치가 되었습니다. 이는 석유의 나라에서 권력이 총이 아닌 합의를 통해 이동한 역사적 전환점이었습니다.

 

3.석유의 아이러니

베탄쿠르 이후 베네수엘라는 비교적 오랜 기간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석유 수출로 확보한 막대한 재정은 복지 확대와 산업 육성에 투입되었으며 국영 석유회사 설립과 OPEC 창설 참여를 통해 자원 주권을 강화했습니다. 특히 1970년대 석유 가격 급등은 국가 재정을 급속도로 팽창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석유는 동시에 위험한 의존을 낳았습니다. 농업과 제조업은 점차 경쟁력을 잃었고 사회 전반에는 소비 지향적 문화와 편의주의가 확산되었습니다. 정치인들은 석유 수입을 장기적인 국가 발전보다는 단기적인 인기 확보와 기득권 유지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으며 부의 분배는 점점 더 불균형해졌습니다. 석유가 많아질수록 국가의 경제 구조는 오히려 취약해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순은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석유 가격 하락과 외채 증가는 경제 위기를 심화시켰고 신자유주의적 개혁 정책은 대중의 거센 저항을 불러왔습니다.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대통령은 한때 경제 대통령으로 불렸으나 긴축 정책과 사회 혼란 속에서 결국 탄핵되어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는 석유 덕분에 국민적 영웅이 되었고 동시에 석유로 인해 몰락한 인물이었습니다.

결국 베네수엘라의 문제는 석유 그 자체가 아니라 석유에 과도하게 의존한 국가 구조에 있었습니다. 석유는 베네수엘라를 부유하게 만들었지만 정치적 책임성과 사회적 합의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석유를 통해 근대 국가로 도약했으나 석유를 넘어서는 데에는 실패하며 또 다른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러니는 오늘날 베네수엘라를 이해하는 데 있어 여전히 핵심적인 단서로 남아 있습니다.